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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9 11:15
비혼·고령화가 바꾼 가족의 정석… '4인가족↓·1인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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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청 ''장래가구특별추계(2017~2047년)''
- 1인가구 급증하고 부부+자녀가구 절반으로
- 비혼·고령화에 여성 가구주 비중 40%까지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세종=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가족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뤄진 4인 가족을 2047년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대신 빠르게 늘고 있는 1인 가구가 보편적 가구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구조가 바뀌는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혼인을 거부하는 비혼(非婚)·만혼(晩婚) 추세가 짙어지고 있어서다.

◇1인가구 年 9만가구씩 증가…부부+자녀가구는 반토막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특별추계(2017∼2047년)’에 따르면 2017년 부부+자녀 가구는 전체의 31.4%로 가장 흔한 가구유형이다. 하지만 이 비중은 오는 2047년 16.3%로 감소한다. 가구 수도 615만 가구에서 363만 8000가구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2047년엔 전통적 형태의 부부+자녀 가구 대신 1인 가구가 가장 많아진다. 1인 가구는 2017년 558만 3000가구로 전체의 28.5%를 차지하고 있다. 1인가구는 30년 동안 연평균 9만 1000가구씩 늘어 2047년엔 832만 가구로 전체의 37.3% 수준까지 증가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면서 자녀 없이 부부만 있는 가구도 2017년 15.8%(309만 3000가구)에서 2047년 21.5%(479만 4000가구)로 늘어 부부+자녀 가구보다 흔해진다.

1인 가구의 평균 모습도 바뀐다. 2017년 현재는 1인 가구 중 30대의 비중이 17.4%(97만 4000가구)로 가장 높고 20대가 17.1%(95만 2000가구)로 그다음이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층이 1인 가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50대 1인 가구는 16.9%(94만 5000가구)로 세번째로 많다.

오는 2047년에는 노인 1인 가구가 가장 많아질 전망이다. 2047년엔 1인 가구 중 70대가 21.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노인 기준인 65세 이상으로 따져보면 노인 1인 가구는 2017년 24.1%(134만 7000가구)에서 2047년 48.7%(405만 1000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 성별은 2017년엔 여성이 50.2%(280만 2000가구)로 남성(49.8%, 278만 1000가구)보다 많지만 2047년에는 남성 1인 가구 비중이 50.3%로 늘어 여성 1인 가구보다 많아지게 된다.

1인가구 연령별 구성비. 통계청 제공
◇비혼 확산·고령화에 여성 가구주 비중 40%까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혼이 늘면서 여성 가구주도 급증한다. 여성 가구주는 2017년 30.4%(594만 4000가구)에서 2047년 39.2%(875만 1000가구)로 50% 가까이 늘어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결혼 건수는 6만 1027건으로 지난해 2분기보다 5189건(7.8%) 줄었다. 연령별 혼인율은 30대 초반 남성과 20대 후반 여성에서 가장 크게 줄었다. 결혼으로 남성 가구주 가구에 속해야 할 젊은 여성들이 단독 가구주로 남으면서 여성 가장이 증가할 것으로 풀이된다.

급속도로 진행하는 고령화로 사별한 여성 노인이 가구주가 되는 경우도 많다. 65세 이상 여성 가구주는 연평균 8만 6000가구씩 늘어난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비혼·만혼으로 미혼인구가 늘고 결혼을 하더라도 주말 부부처럼 직업이나 학업 등으로 떨어져 사는 분리 가구가 많다”며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여성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가구주 연령도 높아져 가구주가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자 가구 비중은 2017년 20.4%에서 2047년 49.6%로 증가한다. 가구 수로도 399만 8000가구에서 1105만 8000가구로 2.8배 증가한다. 이 가운데 고령자 1인 가구가 2017년 134만 7000가구에서 2047년 405만 1000가구로 3배 넘게 늘어난다.

한편 전체 가구 수는 2017년 1957만 1000가구에서 2040년 2265만 1000가구까지 늘었다가 2041년부터 감소를 시작해 2047년엔 2230만 3000가구에 이를 전망이다.
성·연령별 가구주 변화. 통계청 제공

조해영 (hych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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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릉 소왕릉 발굴결과 공개
석실 내부 100년만에 재발굴
“내부 깨끗, 아무것도 없었다”


소왕릉 봉토 안에서 파묻힌 채 발견된 석주형 묘표석. 길쭉한 사다리꼴의 골무 모양을 하고 있다. 선화공주의 흔적은 없었다.

신라 진평왕의 딸로 백제의 30대 임금 무왕(재위 600~641)의 왕비가 되어 전북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로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이 선화공주다. 그가 묻혔다고 옛부터 전해져온 전북 익산시 석왕동 쌍릉 소왕릉 내부를 최근 발굴해보니 무덤주인이 선화공주임을 입증하는 유물이나 자취는 전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돌비석 모양의 묘표석. 무덤 연도 폐쇄석 앞에서 확인됐다. 무덤 석실 앞부분의 표지석과 봉토층 안에서 나온 표지석을 함께 찍은 사진이다. 기존 한반도 고대고분에서 볼 수 없었던 유물이다. <한겨레>의 취재 결과, 지난 4월부터 소왕릉을 조사해온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주초 소왕릉의 유해 안치 공간인 석실 부분까지 파들어가 내부를 집중조사했으나 선화공주의 존재를 실증하는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무덤은 1917년 12월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쌍릉의 다른 큰 무덤 대왕릉과 함께 일주일간 조사했으나, 1920년 낸 약식보고문에서 “도굴피해가 심해 어떤 부장품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소왕릉 발굴현장. 단면을 사방으로 갈라 절개한 모습으로, 사진 중간부분의 발굴구덩이 안에 보이는 골무 모양의 석재가 이번에 처음 확인된 묘표석이다. 최완규 소장은 “석실 내부는 쓸어간 것처럼 깨끗한 상태였고, 주검 든 관을 놓는 관대가 새로 확인된 것 외엔 아무 유물도 없었다”면서 “일제강점기 발굴 흔적과 그 이전에 석실 천장 귀퉁이를 뚫고 들어온 도굴 흔적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선화공주를 입증하는 직접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을 입증하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선화공주의 설화는 여전히 유효하고 실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연구소 쪽은 선화공주 관련 유물은 찾지 못했으나 무덤의 봉토 내부와, 석실 입구를 막는 폐쇄석 앞 1m 지점에서 무덤을 지키려는 용도로 추정되는 묘표석(표지석) 두점을 각각 찾아냈다. 두 표지석들은 백제시대의 무덤은 물론, 한반도의 고대 고분들 가운데서도 처음 확인되는 유물로, 야쓰이의 1920년 약보고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출토품이다. 봉토 내부에서 뉘어진 채 발견된 표지석(길이 110㎝, 너비 56㎝)은 길쭉한 사다리형으로 골모 모양의 석주 형식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석실 입구 앞에서 비스듬히 세워진 채 발견된 또다른 표지석(길이 125㎝, 너비 77㎝)은 앞면이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뒷면은 약간 볼록한 비석 모양을 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소 쪽은 “두 묘표석을 적외선 촬영 했으나 표면에 글자가 새겨진 흔적은 찾지 못했다”면서 “국내 고대 무덤에 각자가 없는 묘표석을 묻은 사례는 만주 집안의 고구려 고분인 우산하 1080호분 밖에 없어 백제 왕실묘장제 연구에 하나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소왕릉의 석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육각형 석실 안에 관대가 보인다. 지난해 발굴된 대왕릉의 것과 얼개가 거의 같은 왕릉급의 시설이다. 또하나, 주목되는 것은 소왕릉이 지난해 발굴된 대왕릉을 그대로 빼어닮은 왕릉급의 얼개임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소왕릉의 봉분은 지름 12m, 높이 2.7m 정도다.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모래질점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판축기법을 썼는데, 대왕릉 판축기법과도 유사하다. 석실은 백제 말기 사비시대 왕릉의 전형적인 얼개인 육각형 단면의 굴식돌방(횡혈식석실)이다. 길이 340㎝, 폭 128㎝, 높이 176㎝로 대왕릉의 석실 규모(길이 400㎝, 폭 175㎝, 높이 225㎝)보다 작으나 측벽 2매, 바닥석 3매, 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의 짜임새는 같으며, 석재 가공 또한 대왕릉처럼 정교하다. 최 소장은 “봉토가 판축된 것은 물론, 정교하게 돌판을 다듬어 만든 육각형 석실 구성까지 대왕릉과 거의 똑같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소왕릉은 부여의 능산리 왕릉급 고분들과 비교해봐도 봉토나 석실의 규모, 품격 등에서 확실한 왕릉급 무덤인만큼 대왕릉과 더불어 무왕과 그의 왕비가 묻힌 능원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대왕릉은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시대 왕릉군인 능산리 고분들을 능가하는 최대 규모의 무덤방과 정교한 판축기법으로 쌓은 백제시대 봉토가 처음 확인된 바 있다.

소왕릉 봉분의 발굴현장을 옆에서 본 모습. 석실 부분까지 절개한 단면이 보인다. 소왕릉은 지난해 발굴한 대왕릉에서 약 180여m 떨어져 있으며, 함께 묶여 쌍릉으로 불리고 있다. 대왕릉과 소왕릉은 향가 <서동요>에 나오는 연애담 설화의 주인공으로 익산에 백제의 왕도를 새롭게 닦으려 했던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힌 무덤이라고 <고려사> 등에 기록이 전해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대왕릉 재발굴 당시 나온 인골이 ‘620~659년 숨진 60대 전후 남성’이란 분석결과를 내놓으며 무덤 주인이 무왕임을 사실상 확증한 바 있다.

연구소는 20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원광대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소왕릉 봉분 둘레에서는 무덤 경계를 짓는 호석들이 배치된 양상도 확인된다. 사진 아래 휘어진 줄처럼 보이는 것이 호석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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